전주 청량산 목부암에 주석하고 있을 때였다. 대사가 그리로 옮기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바람도 구름도 없이 맑은 날 밤이면 성좌를 알 수 없는 별 하나가 멀리 동쪽 들녘 끝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기고 찾아간 곳이 바로 목부암이었다. 대사는 이 목부암에 이르러 암자 이름을 원등암이라 고쳤다. 그것은 멀리까지 암자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인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본디 목부암은 나한도량이었다. 열여섯 분의 나한들이 모셔져 있었다. 나한들은 목부암 불빛을 대사에게 비쳤는데 그것은 대사의 뜻을 계발하기 위함이었다. 나한들은 월명암의 진묵대사를 오래 전부터 존경해 왔던 것이다.
전주부에 어떤 이름없는 아전이 있었다. 그는 평소 대사와 아주 가까이 지내는 터수였다. 어느 날 그 아전은 관청의 물건을 몰래 훔쳐 달아나려다 대사에게 들켰다. 대사가 가엾은 표정으로 말했다.
“흠보, 즉 관청의 공적인 물건을 사사로이 써 버림이 어찌 사내대장부로서 할 일이겠는가. 그러지 말고 그 훔친 물건은 도로 관청의 제자리에 갖다 놓고 대신 쌀 몇 말을 가져다 저 나한들에게 공양하게. 그러면 머지않아 좋은일이 있을 것이네.”
아전은 부끄러워하면서 돌아갔다. 잠시 후 아전이 쌀 몇 말을 지고 왔다. 대사가 말했다.
“참 잘했네. 그 쌀로 공양을 지어 나한님들에게 올리게.”
아전은 손수 공양간에 들어가 밥을 지어 나한님께 올려다. 대사가 말했다.
“전주 부청에 혹 빈자리가 있지 않던가?”
“감옥의 형리 자리가 잠시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봉급이 매우 박하고 그다지 할 일도 없는 그러한 자리입니다.”
“일도 있고 없고는 그만두고 얼른 가서 그 자리를 자청하여 맡도록 하게나. 앞으로 한 달 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네.”
“정말 그럴까요?”
“허! 이 사람 속아만 살아왔나!”
아전이 돌아가고 나서 대사가 나한전에 들어갔다. 대사는 들고 있던 주장자로 나한들의 머리를 세 번씩 두드리고 말았다.
“그대들은 방금 그대들에게 공양 올린 아전을 눈여겨보았겠지? 세상에는 공짜란 없는 법이다. 그러니 그 아전의 일을 잘 도와주도록 하라.”
그 이튿날 아전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나한이 나타나 꾸짖어 말했다.
“너는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들에게 직접 청탁할 일이지 어찌하여 스승인 큰스님께 아뢰어 우리를 주장자로 맞게 만드느냐?”
아전이 꿈속에서 말했다.
“큰스님께서 주장자로 때렸다고요? 어째서요?”
“이유는 알 필요 없다. 하여간 이번 일은 우리 스승님의 명령이니 도와주겠다. 그러나 앞으로 다시 그러한 일이 있을 때는 어림도 없는 줄 알아라.”
“잘 알겠습니다, 나한님들.”
꿈을 깨고 낭아전은 곧바로 전주 부청에 달려가 옥리 자리를 자청했다. 전주 군수도 그 자리를 선뜻 내맡겼다. 그러지 않아도 봉급이 박한 자리라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던 것을
자청해서 맡으려 하니 전주 군수로서는 다행중 다행이었다. 송사는 계속해서 일어났고 송사가 있을 때마다 수당이 지급되었다. 아전은 생각보다 꽤나 넉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하루는 전주군주가 아전을 불러 호방의 자리가 비었으니 그리 옳겨 앉으라 하였다. 아전은 비로서 나한님의 공덕과 대사의 덕화를 느꼈다. 그런데 한 번 배운 도둑질은 쉽사리 그만둘 수 없었는지, 뇌물을 받은 것이 발각되어 호방이 된 지 석 달만에 옥고를 치렀다고한다.
하루는 대사가 길을 가는 도중에 시냇가에서 고기잡는 소년들을 발견했다. 마침 아이들은 고기를 잡아 그것으로 추어탕을 만들고 있었다. 냄비에서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추어탕이 끓고 있었다. 대사가 가까이 가서 한 소년에게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추어탕입니다, 스님.”
대사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이 가엾은 물고기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괜스레 화탕지옥의 고통을 받는구나, 쯧쯧.”
한 소년이 물었다.
“스님, 한 그릇 떠 드릴까요?”
“음, 거 좋지. 나도 잘 먹느니라.”
“그럼, 한 그릇 드릴 테니 다 드십시오. 저희들 무안하게 하시지 마시고요.”
대사가 추어탕을 맛있게 들자 한 소년이 대뜸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하지 말라 하셨지요, 스님?”
“그러셨느니라.”
“그런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고깃국을 드십니까? 이는 불살생의 계를 범한 것이 아닙니까?”
“살생은 너희들이 했지. 나는 먹기만 했느니라. 그러나 나는 너희들이 죽인 고기들을 죄다 살려 줄 수 있느니라.”
소년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한 번 보여 주시지요. 그렇게만 하시면 저희들이 스님을 믿고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대사는 그러마 대답을 하고 물을 등지고 앉아 배설을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대사의 배설물은 모두 물고기로 변하여 기세 좋게 물결을 헤치고 헤엄쳐 갔다. 대사가 물고기들을 보며 말했다.
“이 놈의 물고기들아, 지금부터는 멀리 강이나 바다로 나가 놀아라. 그리고 낚시밥을 물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까딱하면 다시 화탕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알겠느냐?”
대사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꼬리를 한 번씩 툭툭 치고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소년들도 대사의 일거일동 주시하고는 감탄하면서 낚시와 그물을 걷어 올렸다.
전주 대원사에서 주석하고 있을 때였다. 대사는 공양 때마다 밀기울을 물에 타마시곤 했다. 대중들은 먹지 않았다. 밋밋하고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양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여간 대중스님네는 밀기울 먹기를 꺼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직 공양은 준비되지 않았고 때는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 있었다. 대사가 선정에 들어 법희선열의 기쁨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웬 스님이 발우를 가지고 내려왔다. 발우에는 흰 쌀밥이 가득 답겨 있었다. 대사가 말했다.
“공양만 보냈으면 되었지, 무엇하러 번거롭게 친히 왔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소승은 현재 해남의 대둔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침 점심 공양 때라 식사를 하려고 발우에 밥을 받았는데 갑자기 발우가 공중으로 뜨는 게 아니겠습니까? 해서 발우를 붙잡았는데 저도 모르게 어떤 신력에 의해 여기까지 날아온 것입니다.”
대사가 공양을 청하게 되 까닭을 말하자 그 스님은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큰스님께서 드시는 공양은 앞으로 제가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겠는가?”
“소승은 영광이옵지요.”
그 스님은 대사에게 예배하고 대사의 공양이 끝나기를 기다려 발우를 드니 삽시간에 다시 대둔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4년 동안 해남의 대둔사와 전주의 대원사를 공양발우가 오가곤 했다. 대사가 대중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밥투정을 한 과보로써 이 절은 앞으로 7대에 걸쳐 가난한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과연 대사의 말대로 대원사는 지금까지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어져 가난하다고 한다. 광해군 14년(1622), 대사의 나이 61세 때 일이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